오, 제주.
자전거탄풍경


오, 제주.


목포에서 배를 타고 제주에 내렸을 때 나는 늘 그랬듯이 오, 제주! 할 줄 알았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어? 제주... 하다가 그래, 제주! 하고는 종국엔 음... 제주... 하고 말았다. 그러다가 허겁지겁 제주를 도망치듯 빠져나오는 배 안에서 섬이 멀어지기 시작하자 나는 다시 제주가 그리워지고 말았다. 


정말 제주에서 딱 한달만 살면 그리움이 사라질까.


섬에 내리면 곧장 천백도로를 횡단하고 내처 중산간의 모세혈관과도 흡사한 좁은 길을 떠돌아다녀야지 했던 초심은 가뭇없이 사라지고 나는 익숙한 그 예전의 길을 답습하고야 말았다.


입으로 이정표의 지명을 씨부렁거려보면 괜히 정겹고도 흥이나는 애월애월 한림한림 모슬모슬 난드르난드르, 를 달리다가 예의 자전거를 탄 동행을 만나 같은 영화를 다시 보는 듯한 엇비슷한 스토리의 사연을 축적하였다.


사람이 사람에게 한결같기도 힘든 일이지만 사람이 자연을 대하는 태도도 한결같기가 힘든 일이었다. 제주는 늘 그랬듯이 그냥 그대로의 제주였을 뿐이었는데 다시 찾은 나는 그 예전의 내가 아니었던 거였다. 나는 무슨 의무라도 있는 사람인 것마냥 길에서 만난 인연들을 꽁꽁 용을 쓰며 한사람도 흘려버리지 않고 챙기고는 우도까지 바래다 주고 성산에서 오렌지호를 홀로 탔다. 


때는 수학여행 시즌이어서 그 큰 배가 예약으로 빈자리가 없다고 하였다. 제주가 알면 섭섭할 일이지만 막상 자리가 없다고 하니 왜 또 그렇게 빨리 벗어나고 싶던지... 대기순번을 받고 기다리니 다행히(?) 빈자리가 났다고 매표소 직원이 표를 주었다. 후련한 마음으로 배에 올라 출렁이는 자리에 앉았다. 다음날 비가 온다는 예보 때문이어서 자전거여행은 지속될 수 없었다. 둘러대기 좋은 핑계도 있었던 셈이다.


간사한 것이 사람 마음이었는데, 막상 배가 섬에서 멀어지자 나는 어쩌자고 저 섬이 다시 그리워지는지 알 수 없었다. 그리우니 언젠가 또 갈거다.


섬이 희미해질 때였다. 힘든 길을 완주한 서로를 대견해하며 성산의 돼지고기집에서 같이 소주잔을 기울였던 어린 여자애의 독백이 떠올랐다.


- 아저씨... 이마가 뜨끈뜨끈한 아이의 엄마가 되고 싶어요.


제주는 처음 찾은 이에게 마음을 열게 하는 힘이 있다. 그녀는 끝내 눈물 지었다.


다행히 나는 처음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