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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은 다시 돌아오지만...
일상다반사



아침에 일어나 커피를 타려고 커피포트의 전원을 올리니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먹통이 되어버리는 거였다. 일진이 안좋은 날이겠거니 짧은 한숨을 한차례 내뱉은 그는 가스레인지로 손길을 옮겼다. 작은 주전자를 올리고 불꽃을 댕기려 레버를 돌리는데 날카로운 기계음만 날 뿐 가스레인지 조차 반응이 없었다. 


불꽃을 일으켜주는 작은 부속이 이물질로 오염되어 있어서 더는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거였다. 


- 하긴…… 두놈 다 햇수로 8년이 지났으니 문제가 생길만도 하지.


빈속에 타먹는 인스턴트 아침 커피를 거르니 괜히 성질이 나는 그였다. 세월에 굴복한 하찮고도 허섭한 세간살이들을 둘러보던 그는 문득 자신의 다리를 내려다보았다. 굽혀지지 않고 쉬이 피로해지며 피가 통하지 않는지 자주 경련이 일어나는 그의 오른발이 영판 오늘의 세간살이를 닮은 거 같아서 나오지도 않는 눈물을 괜히 속으로 찔끔거려보는 그였다.


이틀 전의 일이다.


산에서 내려오는 길에 단골 통닭집에 들른 그는 한참 닭 튀기기에 바쁜 여사장의 간을 보았더랬다.


- 저기, 사장님. 제가 쿠폰이 열장 모였거든요. 가지고 오면 맥주 한 병 주실 수 있나요?


- 무슨! 열장이면 닭은 공짜고 술값만 계산하면 돼.


오! 예……


당연한 권리를 주장하는 방식에도 이런 수준의 요령밖에 부릴줄 모르는 그는 천상 낯선 곳에선 밥 못얻어먹을 성품의 소유자였다. 빈속을 쓰리게 하는 아침 인스턴트 커피를 못끓여 먹은 탓에 괜히 허전하고 불안해서 한쪽 다리를 덜덜 떨던 그가 전화기를 냅다 들었다. 전화기 너머 상대방에게 그는 호기롭게 외쳤다.


- 상오, 닭한마리값이 생겼으니 저녁에 봅시다. 늘 먹던, 옆 가게 커피값은 당신이 들고오시오.


세월이 지나 몸에 기능이 하나 둘 떨어지기 시작하는 나이가 되었을 때 옆에 있는 친구가 이제 끝까지 갈 친구지. 그 친구를 살뜰히 챙겨야겠다고 괜히 용을 쓰며 주먹을 불끈 쥐어보는 거였다.


계절이 다시 돌아오고 있었다.









서먹서먹 하였다.
자전거탄풍경


익숙한 풍경을 뒤로 하고 자전거의 방향을 산으로 돌렸다. 계절은 이미 성급한 여름기운이 죽자고 덤비는 날이어서 짧은 시간 달렸지만 이내 등에 땀이 찼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오르막을 오르는데 버스 정류장 근처 난장 한 귀퉁이에 눈길을 끄는 풍경이 있었다. 


폐지를 수집하는 노인이 수레에 쌓여있는 폐지를 한장 한장 들추어서는 종이 위에다 페트병의 물을 슬쩍슬쩍 붓고 있었다. 한장 한장 꼼꼼하게. 


나는 어쩌자고 이런 숨찬 순간에 흘려버려도 될 민망한 상황이 자주 동공에 포착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이 광경을 되도록 거짓없는 모국어로 표현하자면.


[노인은 폐지를 한장 들어올리고 그 위에 페트병의 물을 찌끄리고 다시 그 밑에 폐지를 들어올려 다시 그 위에다 물을 찌그리고 있었다.]


그렇지... 찌끄리고 있다는 문장보다 더 적확한 표현은 없는 것 같다. 자전거를 탄 내 어깨가 그 노인을 스쳐지나가는 순간 영악한 나의 뇌는 그 노인의 형편을 재빠르게 훑고 있었다. 폐지는 무게에 따라 돈으로 바뀌어지는 형편이어서 그 사이 사이로 물을 먹여 무게를 늘이고 있는 거겠지. 혼자 생각일지는 몰라도 그래서인지 노인의 얼굴은 일이 사람에게 은밀히 던져주는 웃음이 없었다. 


입바른 소리로 뭐라 타박하거나 값싼 이해를 구할 수도 없는 날것 그대로인 도회의 삶이었다. 노인과 내가 이해당사자가 아닌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만약에 내가 그 폐지를 매입하여야 하는 입장이었다면... 폐지가 품고 있는 수분은 어떻게 처리하여야 하나? 물은 생명과도 같은데 어느 시공간에 처하였느냐에 따라 거세의 대상이 될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물이 그런데 하물며 사람의 삶은 어느 지경까지 누추해질 수 있을지. 


뇌속이 복잡하였다.


오랜만에 자전거로 산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는데 일체의 풍경이 서먹서먹하였다.









꽃소식
일상다반사

지금 이곳은 꽃이 제색깔을 찾아가느라 바쁘기가 말도 못해요. 


그곳은 여기보다 더하겠지요? 


작년에 그곳에서 보았던 동백꽃이 그리워 목이 쉴 지경입니다.


동백이건 벚꽃이건 조만간 다시 찾을 터이니 쉬어빠지지 말고 남아있으라 전해주세요.






입춘대길, 건양다경...
일상다반사


입춘대길, 건양다경(建陽多慶)...


동네 골목에 복을 비는 듯한, 아니면 액운을 떨쳐버리기 위해서이기도 한 듯한 기원이, 주술이 을씨년스럽게 내팽겨쳐져 있었다. 쌍으로 만든 모습이 다정하면서도 누운 자리가 차가운 시멘트 바닥이어서 괜히 처연해보였다.


건양다경... 봄의 따스한 기운이 감도니 경사로운 일이 많으리라.


아마도 사람만이 봄의 따스한 기운 정도만으로는 만족을 못하는 유일한 포유류겠지. 나또한 그렇다. 갈대를 줒어 집으로 갔다. 지금은 먼 대륙에서 흘러온 흙먼지 냄새가 가득한 도회의 밤. 하늘은 비를 준비하고 있는데 나는 몰래 갈대로 인형을 만들고 있다.


기원과 주술이 손끝에서 간당거리고 있는 밤이다.

 


해피투게더, 야간매점
일상다반사

우리나라에서만 통용되는 말이 있다. 개그맨이라는 말이다. 이 말은 통상의 영미권 사람들은 사용하지 않는 말이다. 처음 사용한 사람은 개그맨 전유성이다. 코미디언이라는 말과 구분할 목적으로 그가 찾아낸 말이니 외국인들이 알아들을 리가 없다. 우리나라의 방송환경에서 희극배우를 뜻하는 코미디언이라고 부르기에도 딱히 적당하지 않고 MC, 진행자라고 부르기에도 썩 어울리지 않으면서도 방송을 통해 사람들을 즐겁게 만드는 연예인을 칭하는 데에는 개그맨 만한 말도 없는 것 같다.


이십대 시절에 한 개그맨 지망생과 인연이 닿았던 적이 있다. 개그맨도 아니고 그저 개그맨 지망생이었는데도 사람들을 얼마나 행복하게 만드는지 그 재주가 너무 신기하고 부러웠었다. 그는 사람을 웃기는 것에도 시간을 정해 놓고 주변 사람들을 포복절도 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정해진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자리를 뜨고 마는데, 사람들은 그가 떠나는 것을 너무나 아쉬워하기 십상이었다. 허리가 끊어질 정도로 웃다가 등돌리고 떠나는 개그 지망생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면 무슨 마법사 같기도 하였다.


후에 안 일이지만 그는 결국 개그맨이 되지는 못하였다. 나는 방송에서 개그맨을 볼 때면 그 지망생의 얼굴이 때때로 떠오른다. 지망생의 내공이 그 정도였는데 정식 개그맨은 얼마나 더 사람을 잘 웃길 수 있어야 시험에 통과할 수 있는 것인지. 사람을 웃음으로 이끌어 잠시 동안이라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능력은 참으로 훌륭한 재주이다. 그 중에서도 개인적으로 유독 좋아하는 개그맨은 유재석이다.


목요일마다 그와 게스트 사이에 벌어지는 토크 공방전을 지켜보면서 이런저런 세상사의 고민을 잊고 작은 행복에 빠져든다. 그러다가 야간매점 코너를 보고 있노라니 문득 나에게도 야간매점용 레시피가 있었던 것이 생각났다. 해서 이렇게 소개해 보는데.



재료는 역시 야간매점용이므로 저렴하면서도 빠른 시간에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인스턴트 미역국과 떡국 두가지만 있으면 된다. 떡국을 절반 정도 냄비에 들어내 깨끗이 씻은 다음 미역국 건조스틱과 함께 넣는다. 물을 떡이 살짝 잠길 정도 붓고 끓인다.



한소끔 끓고 나면 미역국 봉지 안의 동봉되어 있는 들기름을 뿌려주고 잠시 더 끊이면 요리랄 것도 없는 미역떡국이 완성된다. 떡국과 미역국이 웬말이냐, 할 사람도 있겠지만 이 레시피는 야간매점용임을 잊지말자. 밤에 출출하기는 한데 라면먹기는 꺼려질 때 제법 그럴듯한 음식이다. 맛은 그런대로 먹을만……



야간매점용 떡국을 우물거리며 드는 생각이, 유재석처럼 사람을 행복하게 웃음짓게 만드는 사람이 내 동생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유명한 개그맨이 아닐지라도.

줄갈기, 유목,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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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갈기.


아마 나 말고 다른 누군가도 이런 비슷한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기타라는 악기의 줄은 어느 순간 아무리 조율을 해도 제 음을 내지 못하는 때가 있다고. 겉은 멀쩡해도 이미 수명을 다했다는 이야기다. 기타를 잘 다루는 사람은 기타줄을 잘 끊어먹지 않는다. 그러나 기타를 더 잘치는 훌륭한 연주가는 기타줄이 수명을 다할 때까지 기다지지 않고 수시로 새줄로 갈아버리는 법이다. 그래야 더 좋은 소리를 낼 수 있으니까.


나는 훌륭한 연주가는 못되어서 그저 줄을 끊어먹지 않고 오래 사용할 줄 아는 정도의 사람이다. 줄의 수명이 다했는지도 뒤늦게야 깨닫는 심히 아둔한 수준의 그저 그런.


줄의 수명이 다했을 땐 과감하게 줄갈기를 해야한다. 세상을 살아가는 것에서도 마찬가지일 거다. 더는 효용이 없는 방식을 미련만 남아 이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유목.


낡고 오래된 기타줄과 흡사한 이 공간을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한 것은 지난해 이맘때쯤이다. 그때부터 나는 내 안에 유목민의 기질이 없음을 한탄하며 지냈던 것 같다. 너무나 많은 선택지를 손에 쥐고 이렇게 해볼까 저렇게 하면 어떨까를 고민하는 사이 여름이 왔고, 가을을 살았고, 겨울속에 움추려 지냈다.


그 옛날 유목민의 느린 걸음으로도 이정도 기간이면 사막을 횡단했을 시간이다. 물론 멍하니 있지만은 않았다. 이미 나는 내가 무엇을 하고 있을 때 스스로가 가장 행복한지에 대한 확신이 생겼고, 내가 좋아하는 일의 새로운 기술도 접하였다. 다만 오랜시간 정착에 익숙한 농경민의 마음가짐으로 살아오다보니 짐을 꾸리고 낯선곳으로 길을 나서는 변화에 설명하기 어려운 두려움이 생겼다고나 할까. 


유목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헛웃음 나오는 꼬락서니일 것이다.


주변을 둘러보니 홀홀단신이었던 칠년전에 비해 너무나 많은 짐이 나를 둘러싸고 있었다. 노새도 나귀도 없이 사막을 횡단하기가 그래서 두려웠을까?



흘러간다.


남들 며칠이면 뚝딱 해버릴 결심을 하는 데에 일년이 걸렸다. 남들 하루만에 뚝딱 하고 싸버릴 짐을 분류하고 꾸리는 데에 일주일이 걸렸다. 너무도 느리고 요령없는 나지만, 이제 스스로를 괴롭히지 않으련다. 이게 바로 변할 수 없는 나니까. 


자, 이제 흘러갈 일만 남았다. 내일이 선명하진 않지만 앞으론 너무 많은 선택지를 놓고 고민만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가슴 두근거리게 만드는 꿈이라는 것이 있었을 때도 내 안의 고민은 지금과 마찬가지의 무게로 무거웠다. 빨리 꿈을 이루지 못해 가슴을 졸이는 일도 있지 않았나. 걱정일랑 떨쳐버리자! 파랗고 넉넉한 목초지를 따라 나도 그들처럼 씩씩하고 유쾌하게 흘러가보자.


씩씩하고 유쾌하게…….




섬집아기, 기타로 쳐봤어요.
카테고리 없음



살아가다보면 어쩔수 없이 듣게 되는 말이 있습니다. 자기관리나 자기개발처럼 요사이 자주 듣게 되는 말이 힐링이라는 단어입니다. 홈쇼핑 방송을 보다보면 듣게 되는 엉덩이가 업돼보입니다, 처럼 우리말도 아니고 영어도 아닌 묘한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관리나 개발이 소비심리를 자극하는 마케팅의 수단이듯이 힐링이라는 말도 결국 돈을 쓰라는 강요와 다를바 없다고 생각합니다. 몸매도 관리의 대상, 피부도 관리의 대상, 인생도 관리…… 거기엔 모두 적잖은 금액을 지불해야 하는 것 투성이고 또 그 트랜드를 따르려다 보면 과한 노동에 내몰리게 되는 것이 현대인의 운명 같습니다. 그래서 이런류의 언어를 듣다보면 좀 폭력적인 것은 아닌가 할  때가 있습니다.


힐링이 상처 받은 몸과 마음에 치유행위를 가한다는 일련의 과정이라고 이해했을 때 가장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내가 상처받은 사실의 여부보다 내가 누군가에게 상처 준 일은 없는가를 먼저 살펴야겠습니다. 그리고 꼭 힐링에 어떤 거창한 격식이나 물질, 사람이나 장소가 필요한 것은 아니겠죠.


잘은 못치지만 [섬집아기]를 기타로 뚱땅거리며 이사람 저람들과의 일을 떠올립니다. 동시에 고요히 생각에 잠기는 시간이 많아지는 요즘입니다. 이것도 일종의 힐링이라면 힐링이겠죠. 제법 오래된 개인적인 방식의 힐링.


                                                                           섬집아기.gp5


악보를 첨부했습니다.

상전벽해, 수영만
자전거탄풍경

상전벽해(桑田碧海), 뽕나무밭이 바다로 바뀐다는 뜻의 사자성어다. 변화를 거스를 수 없는 것이 자연의 이치고 사람도 그 변화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부산에서 상전벽해라는 말을 가장 실감할 수 있는 곳을 꼽으라면 아마도 이곳 수영만 근처일 것이다. 차이가 있다면 뽕나무나 바다 대신 흙먼지 풀풀 날리던 곳에 마천루가 들어섰다는 것 정도. 


건물이 들어선 곳 대부분은 예전엔 바닷물과 강물이 만나 흐르던 곳이었다. 매립을 통해 이 넓은 땅이 새로 생긴 것이다. 지하철이 아직이었던 시절엔 버스로 한시간은 예사로 걸리던 부산의 변두리였는데 요즘은 이 근처에 산다면 제법 방귀 꽤나 뀌고 사는 축에 든다는 대접을 받는다.



정비된 강변산책로를 따라 자전거로 달리다보면 한번도 가보진 않았지만 뉴욕 맨해턴의 분위기가 대체로 이렇지 않겠나, 하는 착각에 빠진다. 해운대와 광안리가 지척이고 주거환경이 나날이 좋아지고 있는 탓에 경제적인 부분에 여유가 있는 사람들에게는 살기에 썩 괜찮은 공간일 것이다. 어쩌다보니 나에겐 이제 이 주변은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 되어버렸다. 


멀리 영화의전당 건물과 세계적(?) 규모의 쇼핑센터가 시야에 들어왔다. 욕심이 있다면 이 풍경속에 자랑할만한 세계적 규모의 도서관도 하나쯤 있었으면 싶다.



먼 바다 대양에서 예리하지 않은 바람이 불어왔다. 아! 모처럼 부산다운 날씨다. 모름지기 부산의 겨울은 요며칠처럼 선선한 정도여야 정상이다. 고개를 들어 먼데 겨울하늘을 바라보았다.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은 것은 하늘뿐이었다. 그런 하늘이 오늘은 전혀 지겹지 않았고 되려 반가웠다. 나도 누군가에게 겨울오후의 하늘같은 사람이고 싶었다. 


보고싶어서 언젠가는 한번쯤 다시 찾게 되는 그런…….







배송곳니
일상다반사

이렇게 치료 받고 나면 보철한 이의 수명은 어떻게 되나요?


솜뭉치를 입에 물고 아직 마취가 풀리지 않은 입으로 치과 간호사에게 나는 그렇게 물었다.


반영구적이라고 봐도 무방하죠. 심드렁한 표정의 간호사가 건조한 음성으로 답했다.


나는 믿기지 않았지만 내심 기뻤다. 한번의 투자로 그렇게 길게 효과가 지속되다니. 치과라면 질색을 하던 내가 삼분의 이 이상 썩어서 무용지물이 되어버린 배송곳니를 이른바 덮어씌우게 되기 까지는 당시 갓 좋아하게 되었던 S라는 여성 때문이었다. 웃으면 충치가 드러나게 되니 입을 다물고 굳은 인상으로 있거나, 불가피하게 웃게 될 때는 손으로 입을 가리던 것을 그 여자애가 싫어했기 때문에 더는 치료를 미룰 수 없었던 것이다.


공간이 넓어 혀끝이 들락날락하던 곳게 제대로 보철이 덧씌워지게 되니 처음엔 어색하기도 하고 틈만 나면 신기해서 거울에 비춰보기까지 하였다. 아마도 그 횟수만큼 당시엔 S를 일상에서 자주 생각했던 것 같다. 어릴적 빠진 유치는 지붕위로 던져버리고 새로 영구치가 생긴 것 만큼이나 내 일상에 S가 자리잡게 된 것이 기뻤었다.


S 덕분에 얻은 그 인공의 배송곳니를 사용한지도 햇수로 십삼년이 되었다. 아직까진 전혀 이상이 없으니 정말 반영구적으로 버텨줄 것도 같다. 동시에 잊고 살았던 S가 생각이 났다. 멀어질 땐 보고싶으면 어떡하나, 보고싶어서 죽을지도 모를 것 같더니 역시 한 십년이 지나니 마음의 상처도 무덤덤해지고 얼굴마저 흐릿하게만 떠오를 뿐이다. 다 늙어 주책이라고 할지라도 문득 떠오르는 옛기억을 막을 수가 없다. 나이를 먹을수록 추억하며 버티는 수밖에 없는 노릇이니. 


배송곳니가 영구적으로 버텨주는 한 나는 때때로 그녀를 문득 떠올릴 것이다. 이 형국은 어쩐지 내가 좀 손해를 보는 것 같다. 아마도 그녀는 살아가면서 나를 떠올릴 일이 없을 테니 말이다. 이럴줄 알았으면 반지나 목걸이 따위를 선물하지 말고 성형수술이나 해줄 것을 그랬나? 화장할 때마다 생각나게. ……. 누군가에게서 잊혀진다는 건 참 쓸쓸한 일이다.


혀끝으로 배송곳니의 주변을 더듬으며 다시 추억에 잠겨 보는데. 

앗!

혓바늘이 돋아 버렸네! 젠장.


낙동강 맥도생태공원의 가시연

31일
일상다반사

어른들은 저 나이가 되면 무섭지도 않나?


한참 어릴 때 윗풍 센 방안 윗목에 이불을 뒤집어 쓰고 10대가요제를 보면서 든 생각이었다. 아버지는 불콰하게 취한 얼굴로 고기냄새 배인 코트를 벗어 어머니에게 건네고 있었다. 나는 눈을 감고 자는 척했다. 여차하면 손목이 헤지고 무릎 나온 내복 바람으로 아버지 앞에서 노래를 불러야 할 판이기 때문이었다. 술이 모자랐는지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술상을 따로 차리게 하여 젓가락 장단까지 곁들이며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따라서 흥얼거렸다.


아버지의 나이를 헤아려 보았다. 당시엔 평균수명이 60대였으므로 아버지는 명백히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훨씬 적어보였다. 어린 녀석이 별생각을 다하고 살았는데, 나는 내가 아버지 나이가 되면 죽는다는 것이 두려워 어떻게 살아가나 싶었다. 아버지는 그 두려움을 잊기 위해 저렇게 술을 많이 드시나? 가끔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올 해의 마지막 날 31일이다.


꼽아보니 내가 그 때 그 날의 아버지와 같은 나이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죽음 따위가 두렵지 않다. 지레짐작으로 아주 두려울 줄 알았는데……. 시간이 좀 더디 갔으면 하는 헛된 기대는 하지 않는다. 지금 이대로도 나쁘지는 않지만 나이로 따지자면 몸은 이제 더 나빠질 일만 남은 셈이다. 다만 그점이 유감이다. 다른 건 몰라도 몸에 병이 생겨 모르는 이들에게 원하지 않는 신세를 지지나 않을까, 그게 오히려 두렵다.


새해부턴 몸이라도 제대로 건사해야겠다. 불끈!


31일. 차고도 메마른 겨울바람이 분다. 바람의 형편이 그러하니 삶을 바라보는 시선도 덩달아 건조해진다. 영혼마저 바싹 말라 누가 툭 건드리면 흔적도 없이 바스러져 겨울의 대기속으로 흩어질 것만 같은 날이다. 


해피 뉴 이어.

고요하고 거룩한 밤의 요셉
일상다반사

마리아와 남편 요셉의 고향은 나사렛이었다. 그랬던 그가 만삭의 아내를 데리고 베들레헴으로 길을 나섰던 것은 당시 이스라엘민족을 지배하고 있던 로마 황제 아우구스토가 온 천하에 호구 조사령을 내렸기 때문이었다. 해서 많은 사람들이 본고장을 찾아야 했다. 성서 누가복음의 이 기록은 그러나 역사가들의 고증에 의하면 그 시기가 예수의 탄생일과 정확하게 일치하지 않는다고 한다마태복음의 기록엔 헤로데 왕 때 두살 이하의 사내아이를 모두 죽이라는 위급한 상황에서 피신하였다고 전하지만 이 또한 누가복음의 기록과도 일치하지 않아서 가끔 혼란을 준다.


성서에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어쨌든 요셉은 고향을 떠나 베들레헴에서 아이를 얻었고 한동안 고향이 아닌 외지를 떠돌다가 다시 고향 나사렛으로 돌아온 것만은 분명하다.


딱히 기독교를 믿는 사람이건 아니건 우리는 예수가 남녀간의 생물학적인 결합으로 태어난 사람이 아니라고 알고 있다. 아는 것과 믿는 것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어쨌든 요셉은 약혼자 마리아의 몸에 결혼도 하기 전에 생명이 자라고 있음을 알게된다. 복음서의 기록엔 그는 법을 잘 지키는 사람이었다. 이 말은 얼핏 흘려넘기기 쉽지만 무서운 뜻을 함의하고 있다. 요셉은 조용히 파혼하는 것으로 일을 마무리 짓고 싶었다. 당시 유대사회의 율법은 처녀가 아이를 가지면 마을사람들이 돌로 쳐서 죽임을 당하게 되는 것이었다. 모세의 율법은 간음한 자에게 너그럽지 않았다.


옆집 사람이 굶어 죽어도 몇달 뒤에나 발견되기도 하는 오늘날과는 다르게 당시엔 결혼을 하거나 아이를 낳는 것은 작은 유대공동체사회에서 숨길 수 없는 일이었다. 요셉의 갈등이 어느 정도 수준이었을지 짐작이 된다. 이런 일이 당신에게 벌어졌다면 당신의 선택은 어떠했겠는가? 물론 성서의 기록은 천사 가브리엘을 동원해 요셉에게 무서워하지 말라, 라는 하느님의 메시지를 전하게 된다. 기독교에 대한 믿음이 없는 이들은 상식적인 입장에서 이 사태에 대해 아주 다양한 상상이 가능할 것이다. 그런 상상은 일단 접어두자. 


호구조사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다른 사정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어쨌든 요셉은 이 얄궂은 운명을 받아들이고 고향에서의 출산과 삶을 포기하고 만삭의 아내를 데리고 조용히 광야로 길을 나선 것이다. 광야의 흙바람을 이겨내고 그들이 당도한 곳은 작은 마을 베들레헴, 그곳에서 두 사람은 변변한 방조차 구할 수 없었다. 아내는 진통을 시작했고 결국 작은 마굿간에서 자리를 만들어 새생명의 탄생을 기다리게 되었다.


산고 끝에 태어난 후 말구유에 포대기로 덮혀 있던 이가 바로 예수였다. 친지들의 도움과 축복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질까 두려워하며 몰래 얻은 아이였다. 그 아이에게 마리아가 수유를 하는 모습을 지켜본 요셉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아마도 그는 마굿간을 나와 무릎을 꿇고 자신의 선택과 새생명을 이끌어주신 그가 믿는 유일신에게 감사의 기도를 드렸을 것이다. 


- 하늘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가 사랑하시는 사람에게 평화!


예수가 태어난 첫날 가장 고요하고 거룩한 이는 바로 그 사람 요셉이었다. 그리고 마리아와 예수, 두 생명을 지켜낸 이순간 어쩌면 그는 구원이라는 선물을 동시에 받았을 지도…….


메리 크리스마스.



마음 한켠이 휑하던 날, 다대포.
자전거탄풍경



마음 한켠이 휑한 날이다. 바다를 보면 조금 나아질까 싶어서 길을 나섰다. 겨울이라는 계절의 바다는 을씨년스럽기 그지 없었다. 나의 간절함보다 그들의 간절함이 더 컷기에 결과가 이렇게 나왔겠지 자위해보지만 쉽사리 납득이 되지 않는다. 무관심마저 비정치적인 것이 아니니 결국 이 나라에 사는 한 어떤 형태로든 정치에 관계될 수밖에 없다. 해서 저 반칙과 특권의식으로 가득찬 자들의 후퇴를 그렇게 간절히 바랐건만…… 


사람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오늘도 하루의 해가 다대포 바다 너머로, 낙동강의 갈대숲 사이로 떨어지고 있다. 앞으로의 나날을 이 대자연처럼 무심하게 버텨낼 수 있을까? 


바다 앞에서 나는 쉽사리 자신할 수 없었다.





혼자 고기를 구워서 먹는 일
일상다반사

혼자서 하기 힘든 일의 순위를 매긴 것을 본 적이 있어요. 


이 가격보다 더 저렴한 곳이 있을까, 싶은 싸구려 삼겹살집에서 고기를 싼 상추쌈을 입으로 가져가며 상오가 한 말이었다. 원산지가 의심스러운 삼겹살을 뒤집으며 눈빛으로만 그게 어떤 건데? 하고 나는 물었다. 


혼자서 영화 보기, 혼자서 밥 먹기…… 영화는 혼자 보기가 습관이 되어서 아무렇지도 않은데 집에서도 아니고 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기란 참 힘든 일인 것 같아요. 나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웃었다. 난 혼자 식당에서 곧잘 밥을 먹는데, 얼마전에는 이 삼겹살집에서 혼자 고기도 구워먹었다구.


상오의 입이 벌어졌다. 저작되다 만 음식물이 보였다. 역시 강적이시군요. 혼자서 하기 제일 힘든 일이 이런 식당에서 혼자 고기를 구워서 먹는 일이라더군요. 뻘쭘해서 죽을 수도 있대요. 상오는 그렇게 말하고 다시 먹는 일에 열중했다. 불판에 잘 구워진 김치가 요즘 입맛을 당기는 음식이다. 뱃속이 어떻게 된 일인지 영 꼬여있다가도 이 단순한 음식을 먹고 나면 다시 편안해지니 주기적으로 찾지 않을 수 없다. 서해를 건너온 김치의 속살이 유난히 희었다. 신선해 보이라고 무슨 약품을 친다는 풍문이다.


형님 대접한답시고 상오가 집게와 가위를 들고 고기를 굽고 자르는데, 그 손놀림이 영 서툴다. 아이씨, 저는 이따위 기능적인 부분에서도 남들에 비해 뒤떨어져요. 이러다간 영락없이 독거노인 신세로 전락할 것 같아요. 


습관이야. 습관. 자주 하다보면 요령이 붙지. 나는 집게와 가위를 낚아채서 시범을 보였다. 그렇지…… 습관. 이렇게 상오와 같이 고기를 구워먹다가 다시 혼자서 먹는 날이면 제법 힘들어지겠지. 투덜거리며 소주잔을 입술로 가져가는 상오를 잠시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치기 전에 속으로 말했다. 


나는 너에게 언제나 좋은 형이 되고 싶단다.



부산... 첫눈.
일상다반사

자주 가는 단골 슈퍼마켓 주인장에게 올 가을 초에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이번 겨울엔 제작년처럼 눈구경 한 번 제대로 했으면 좋겠습니다.


주인장은 손사래에 고개까지 절레절레 흔들며 답했다. 아유…… 눈이라면 아주 지긋지긋합니다. 그의 고향은 강원도 태백이었다. 평생 살아도 부산에서 눈구경하기란 말 그대로 가뭄에 콩나듯 했던 나와는 눈에 대한 태도가 다를 수밖에 없었다. 허나 이것도 기후변화 때문인지 제작년에는 눈이 제대로 내렸다. 한 이틀 부산이라는 도시가 온통 마비가 될 정도로.



어떤 이들은 먹고사는 일에 지장이 생긴다느니 도시기능의 마비가 어쩌고 하면서 걱정들이 많았는데, 나는 이상하게도 그게 좋았다. 다들 어디론가로 향한 움직임을 멈추고 하얗고 고립된 세계 안에서 조용히 웅크리고 있는 모습들이 그리고 그 느리디 느린 시간의 흐름들이.


수상한 기척이 있어 내다보았더니 바깥은 그때처럼 한참 설국이 진행중이었고 사람들은 저마다의 하얗고 고립된 세계로 종종걸음을 치고 있었다. 눈이 떨어지는 속도는 초속 십오센티미터 정도.


한 이틀 계속 이랬으면 싶었다.

























낙동강의 가을
자전거탄풍경

 

 

낙동강을 지척에 두고 있는 곳에 살다보면 자연스럽게 강의 표정 변화에서 세월의 변화를 읽게된다. 이 계절에 부산에서 가장 큰 볼거리라면 역시 부산국제영화제일 것이고 다음으로는 사상구 삼락공원변의 대규모 갈대밭이다. 대중교통으로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에 이런 장관이 있다는 것은 복이라면 복이다.

 

규모면에서라면 전국 최대규모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석양에 물억새가 흔들리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보면 거창한 철학이 아닐지라도 차분히 지나온 한 해와 스스로를 돌이켜보게 된다. 사람의 키높이를 훌쩍 넘어서는 갈대밭 사이로 군데군데 오솔길이 나있다. 홍수에 물이 들었다가 빠져나간 뒷자리가 조금 어수선하지만 그래도 장관이 아닐 수 없다.

 

가을엔 놓칠 수 없는 곳이 낙동강의 이 오솔길이다.

 

 

       ▲ 지자체에서 심어놓은 코스모스도 한창이다.

 

       ▲ 인근 삼락공원 내부엔 무료주차장과 텐트를 설치할 수 있는 장소가 많다.

 

 

 

맛집이라는 단어에 대해 크게 공감을 못한다. 혀가 깊은 맛을 구분할 정도로 섬세하지 못한 탓이다. 그래도 사람 심리라는 것이 사람 북적이는 음식점에 괜히 눈길이 한 번 더 가게 마련이다. 평소 지나가다보면 앉을 자리를 쉽게 찾을 수 없는 가게가 동네에 생겼다. 지하철 덕포역 2번 출구 근처의 꼬리고기집이다. 온 동네 사람들이 다 아는 곳이라 지하철 역에서 내려 꼬리고기집을 찾으면 된다.

 

운이 좋았는지 마침 자리가 있어서 냉큼 앉고 주문을 했다. 오랜만에 맡는 연탄가스 냄새가 옛생각을 나게 만들었다. 옆 테이블에서는 건설일용노동자의 거친 사투리 소리가 크게 났고, 건너편 테이블에서는 중국인 남녀가 북경어로 노래하듯 떠들고 있었다.

 

 

음식은 간단했다. 돼지고기의 인기 없는 부속물을 듬성듬성 썰어 한 번 삶은 뒤 나오는 것이 음식의 전부다. 무슨 비법이 있을 것 같지도 않고 다른 사람 다 맛있다는데 나만 맛없는 것이 이상해서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돼지고기가 일차적으로 한 번 삶아진 상태이기 때문에 지방층이 많은데도 크게 느끼하지 않았다.

 

가래떡을 불에 구워 먹는 것처럼 돼지고기는 연탄불에 꾸덕꾸덕 익어갔고 나는 고기 한 점에 소주 한 잔으로 가을을 삭혔다.

 

음식은 깨끗한 재료로 정갈하게 조리하면 그만이라는 것이 평소 생각이어서 어떤 평을 내릴 수 있는 식견이나 감각이 나에겐 없다. 해서 다 먹고 일어서는 순간까지 별다른 음식에 대한 수사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음식의 가격이었다. 양은 두사람이 먹어도 넉넉할 정도였는데, 가격은 한 접시에 칠천원이었다. 순간 이 허름한 음식점이 맛집으로 이름을 날릴 수 있었던 비결은 가격이었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하루의 고단한 노동에 지친 서민들이 어디가서 이렇게 저렴하게 고기안주에 소주 한 잔 걸칠 수 있을까.

 

값을 치르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소주 기운에 연탄가스 기운까지 겹쳐니 느닷없이 찾아온 가을이 견딜만하였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7, 돌하르방 어디 감수광
일상다반사



누구나 한 작가의 저작을 오래 읽은 경험이 있을 것이다. 자기 취향에 맞는 작가가 한 두사람쯤은 있는 법이니까. 내게 있어서 유홍준 교수가 그런 경우다. 지금은 대부분 세월의 변화에 따라 흔적없이 사라졌지만 예전에는 동네 골목골목마다 만화방이 흔했다. 한정된 용돈으로 만화를 보자면 선택에 있어 골머리를 부여잡기 십상이었는데 이 만화 펼치면 이 것이 재미있을 것 같고 저 만화 펼치면 저 게 또 재미있을 것 같아 한참을 망설이기가 일쑤였다. 그러다가 만화방 주인장에게, 공짜로 서서 만화 다 보냐고 지청구를 듣기도 했고.


이 때 재미의 보증수표와도 같은 작가의 이름은 선택을 참 편하게 해준 고마운 것이었다. 전국민이 다 알법한 이현세,허영만,박봉성...


만화가 그러했던 것처럼 유홍준과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라는 타이틀은 내게 조금도 주저함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 만큼 개인적인 취향에 있어 잘 읽히는 책이고 동시에 한 번 잡으면 쉬이 놓지 않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다. 예고했던 내용이지만 그의 이번 신작은 제주에 관한 것이다. 책 한 권에 제주의 모든 것을 담을 수는 없겠지만 예의 유홍준 교수의 스타일이 그대로 반영된 책이다. 한 작가의 글을 되풀이 읽다보면 어느정도 그 작가의 글쓰기 스타일이나 취재에서 얻은 정보를 글로 엮어가는 노하우 같은 것이 포착될 때가 있다. 그러다보면 나 스스로도 그 작가의 문장을 흉내 내게 될 때도 있고. 


그런저런 사정이 파악되면 책이 나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을 글쓰기에 매달렸을지 가늠이 된다. 해서 좀 아껴서 야금야금 음식을 저작하듯 정독하게 되는 것은 당연지사.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길 때마다 올 봄 제주를 떠다니며 눈으로 확인한 풍경들이 새삼 다시 떠오른다. 그리고 데면데면 그냥 스쳐 지나갔던 곳의 숨겨진 사연들을 책을 통해 알게 되면서 떠나온 여행지가 다시 그리워진다. 전작에 비해 사진이 비교적 많이 실렸다. 아름다운 제주의 풍광을 글로만 설명하기엔 부족함이 있었을 것이다. 장담하건데 이 책을 읽고 떠나는 제주여행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한층 풍성한 경험을 여행자에게 던져줄 것이다.


올 가을엔 이 책을 옆구리에 끼고 다시 제주를 찾을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고대해 본다.




큰물피해, 길이 사라졌다.
일상다반사



연일 쏟아지던 비가 그친지 이틀째다. 늘 다니던 자전거길을 찾으니 온통 물바다다. 유난히 태풍이 잦았던 해로 기억될 것 같다. 물난리가 있을 때 넘실거리는 강물을 보며 늘 신기한 것은 그렇게 씻기고 씻긴 땅에서 더 씻겨나올 흙이 남아 있었을까, 하는 것이다. 


강은 한치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흙탕물 투성이었다.


한 이틀 큰비에 낙동강의 하류는 쉽게 넘쳐나고 말았다. 그간 사람들의 궁리가 무색하게도 단 한번의 큰비에 그렇게 된 거였다. 흙탕물 속엔 그간 쏟아부었던 그들의 결과물들이 잠겨있다. 허무하게도.


문제는 이런 일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일까? 그럴리가 없다. 뻔히 알면서도 그리 한 것이다. 과연 누구를 위하여 사람들은 그 일을 벌였던 것일까?



당분간 강따라 달리는 자전거 종주길은 이번 큰 비로 사실상 중단되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물이야 빠지겠지만 흙탕물에 쓸려온 온갖 잡동사니들이 치워지지 않는한 길은 길이 아닐 것이다. 


다시 한번 의문이 든다. 일을 벌린 사람들은 이렇게 될 것을 예상 못했을까? 주기적으로 범람하는 곳에 길을 내고 수시로 청소를 해야한다면 길은 과연 오래 유지될 수 있을까?



자전거가 달리던 길에 미꾸라지가 올라왔다. 흙탕물엔 미꾸라지가 제법 어울린다. 미꾸라지는 죄가 없는데 이 난장판과 허무한 길에 대한 책임은 누구에게 물어야 하나. 하늘이야 사람의 일을 돌보는 법이 없다. 해서 노자는 천지불인(天地不仁)이라고 하지 않았나.


불인한 자연에 섯부른 인공을 획책한 자들은 아마도 어리석은 사람일 것이다. 다시는 어리석은 자에게 큰일을 맡겨서는 안될 것이다.


물이 불은 강과 물에 잠긴 길을 보고 있자니 참 여러가지 생각이 났다.






흔한 추석 선물 세트
일상다반사



누구나 같은 금융기관과 20년 이상 거래를 하다보면 의례적인 명절 선물을 받기 십상이다. 택배기사의 연락을 받고 뛰어나가 받은 선물상자를 개봉하니 놀라웁게도 통영멸치가 한가득이다. 놀란 이유는 멸치의 원산지가 올 초 자전거여행을 갔다가 들른 통영 한려수도인데다가 생전 요리라고는 안하던 내가 요즘 된장찌개 끓이는 일에 제법 재미를 붙였던 터였다.


된장찌개와 멸치는 뗄래야 뗄 수 없는…… 한동안 멸치는 잊어버려도 되겠네.


거기다 마른새우도 한 봉 같이 들어있으니 괜히 마음이 설렌다. 새우를 넣은 국물에서는 어떤 맛이 나려나. 의례적인 명절 선물이겠거니 했는데 괜히 혼자서 감격했다. 물론 보내는 측에서야 무작위로 보냈겠지만, 나는 꼭 누군가가 내 살아가는 사정을 속속들이 알고 있다가 살뜰히 챙겨서 건넨 듯한 착각에 빠져든 것이다.


봉지를 찢어 냄새를 맡으니 지난 초여름의 그 바다 냄새가 폐부로 빠르게 파고들어온다.


괜히 눈물겨웠다.


흔한 선물 세트에 이토록 혼자 감격하고 앉았다니. 






보호색의 메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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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생각없이 자전거를 타고 가는데 나를 놀래키는 물체가 바닥에서 눈에 들어왔다. 바닥의 색과 구분이 어려운 메뚜기 한마리였다. 급히 브레이크를 잡으며 메뚜기를 피했다. 하마터면 그를 밟고 지나갈 뻔했다. 이런 일을 일컬어 로드킬이라고 한다지.


이 경우는 너무 지나친 그의 보호색이 되려 그의 생명을 위태롭게 한 것이다.


오래간만에 만나게 된 생명이라 자전거에서 내려 구경하였다. 오호라, 자세히 보니 메뚜기과의 방아깨비였다. 다리를 잡으면 속절없는 버둥거림이 방아를 찧는 모습과 흡사하여 그런 이름이 붙었다 한다. 붙잡아 옛일을 재현해 보려 하다가 멀리 한 무리의 마라톤 동호회원들이 몰려오고 있어서 포기했다. 이대로 방아깨비를 내버려 두었다가는 사람의 발에 밟힐지도 몰랐다.



나는 그를 길에서 수풀 쪽으로 몰았다. 내 마음은 급한데 방아깨비는 꿈쩍을 할 줄 몰랐다. 손톱으로 더듬이 옆을 한 대 때려주니 그제서야 놀라서 날개를 펴는 방아깨비.


잠깐 따다다다, 하는 소리가 났고 그는 짧게 비행하여 풀잎 위로 몸을 옮겼다. 뭔일 있었냐는 듯 거만하게 머리를 곧추세우고 있는 모습이 꽤 우스웠다. 보호색 말고도 그는 기특하게 날개를 몸에 숨기고 있었던 거였다. 마침 마라토너들이 우르르 지나갔고 나는 다시 자전거에 올랐다. 


보호색에 의지해 숨어 있기보다는 날개를 펴야 할 때는 펴야하는 법이다. 나는 괜히 마음이 급해졌다.



유혹하는 연꽃
일상다반사



연꽃은 어떤 각도로 찍어도 아름답습니다. 배경에 어둠을 깔고 있어서 꽃은 더 화려한 것 같습니다. 철 지난 사진이지만 자주 가는 공원 연지에 연꽃이 한창일 때 카메라에 담아두었던 것을 마음이 울적해질 때면 꺼내어 보게 됩니다.


보고 있으면 꼭 이렇게 화려한 연꽃을 닮은 사람이 옆에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 욕심이란 끝이 없는 것 같습니다. 요즘 공원 연지에 가보면 꽃은 대부분 져가고 그 자리에 연밥이 달려 있습니다. 연의 씨앗은 일만년을 간다,하는데 꽃이 진 뒷자리에 남은 모습은 사람의 시선을 잡아끌지는 못하고 있네요.


꽃의 유혹이 그 만큼 강했던 탓이겠지요.









약수터의 유기견
일상다반사



자주 가는 약수터 근처에 개 두마리가 나타났다. 처음 본 때는 더위가 유난한 어느 복날이었다. 같은 날 태어난 것으로 보이는 두마리의 개는 약수터에 오가는 사람 아무에게나 착한 얼굴을 하고 꼬리를 흔들었다. 처음엔 주인이 있겠거니 했는데, 개들의 하는 모양이 유별났다. 이 사람 나타나면 이 사람 따라 쪼르르 달려가고 저 사람 나타나면 저 사람 따라 종종걸음을 치고. 특히 자동차에서 사람이 내리는 기색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했다.


사람들은 무턱대고 따라오는 개들을 피하기에 바빴다. 그도 그럴것이 도회의 형편은 개 두마리를 키우기에는 솔직히 좀 야박한 상황이다. 개들의 행동과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나서야 버려진 개들임을 알게되었다. 나 역시 개들을 피하여 집으로 돌아왔다.



그 후 약수터에 갈 때마다 개들은 종종 나에게도 반갑게 달려들었다. 두 마리 중 한 마리만 유독 그랬다. 형인지 동생인지 알 수 없는 나머지 한 마리는 점점 지쳐갔는지 먼데서 멀뚱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아마도 개는 자신들을 데리고 갈 주인이 쉽게 나타나지 않을 것을 직감하고 있는 듯했다.


사정은 안됐지만 나는 별 방도가 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예의 약수터를 들렀는데 두 마리의 개가 보이지 않았다. 마음 착한 사람들이 거두어 갔을까? 아니면 어디 기관에서 보호시설로 데리고 갔을까. 생각은 급기야 혹시 어디 끌려가서 팔려버린 것은 아닌지 하는 어두운 생각도 났다. 풍경속에 두 생명체가 사라진 것만으로 괜히 허전한 생각이 들었다.


정작 보살펴 주지도 못했으면서...


늘 마음은 약수터로 출발하면서 가방 안에 개에게 먹일 간식거리라도 챙겨가야지 했지만 실천하지 못했던 것이 후회가 되었다. 



어디 좋은 주인이 나타나 잘 살았으면 하고 바랐는데, 오늘 오후에 약수터에 들르니 늘 뛰어놀던 길가에 개들이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인사도 건네고 사진도 찍었다. 변화가 있다면 둘 다 사람을 반기는 강도가 많이 줄어 있었다. 사람들이 결국 자신들을 외면하는 것에 이미 익숙해져 버린 탓일 거다.


가방을 뒤졌지만 그들에게 먹일 아무 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기회를 또 놓치고 만 것이다. 개들은 활동반경을 넓혀 이곳저곳 먹을 것을 구할 수 있는 곳을 찾아 떠돌이 생활에 접어든 거였다. 해서 타이밍이 맞지 않으면 약수터 근처에서 볼 수 없었던 것이다. 


멀리서 검은색 승용차가 다가왔다.


애교가 많은 한 마리가 부리나케 자동차 가까이에 달려가서 꼬리를 흔든다. 역시 차에서 내린 중년의 남성은 소 닭 보 듯하며 개를 스쳐지나간다.


개는 아마도 자동차의 엔진소리 시트의 가죽냄새에서 그들이 떠나온 곳, 집을 기억하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존재의 형태가 어떻든 간에 버려진다는 것은 몹시 쓸쓸한 일이었다.

 

이별 만큼이나.




기다려지는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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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기다려지는 요즘입니다. 올해의 더위도 십여년 전의 그 더위와 함께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더위 같습니다. 대학 3학년 때였나봅니다. 다들 해외연수다 뭐다 방학이 되자 바깥으로 바깥으로 떠나기 바빴던 그 시절. 나는 한평 반짜리 고시원에서 그 해의 더운 여름을 버텨내고 있었더랬죠.


지금은 그 시절로 참 돌아가고 싶지만...


땀을 있는대로 흘리면서도 스스로에게 만족스러워서 책상을 떠날 때면 창 밖으로 떨어지는 하루의 해에 부끄럽지 않았습니다. 행복이란 열정을 쏟을 수 있는 대상이 있다는 것과 그 대상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세월의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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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는 듯하던 날씨가 기승이더니 요즘은 연신 비의 연속이다. 태풍도 온다니 이러다가 가을은 비와 함께 성큼 다가올 것이다. 가을과 동시에 월동할 곳을 찾아 나서야겠지. 오지 않을 것 같던 날이 참 빨리도 다가온다. 


세월은 늘 이런식이다.


그래서 때때로 두렵다.

블로그 사용설명서
일상다반사

블로그 이름: your2013

 

블로그 주제: 마구잡이 글쓰기


이런 저런 블로그 서비스를 전전하다가 

도망치듯 이곳으로 이사했습니다. 


다른 블로그에서는 전세집에 사는 느낌이었다면 이곳에서는 

비로소 내 집을 가지게 되었다는 묘한 느낌이 드네요. 


이곳이 네트워크 상의 마지막 거처였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몰라도 상관없지만 알아두면 편리한 점.

 

상단매뉴 중 List를 클릭하면 전체목록을, tag를 클릭하면 카테고리 목록을 볼 수 있고,

Guest를 클릭하면 방명록에 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사진을 클릭하면 가끔 더 큰 사진을 볼 수 있기도 해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