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견문록3 용산 전쟁기념관
자전거탄풍경



기대하지 않았던 풍경을 문득 만날 때 여행은 즐거워진다. 살짝 지루했던 교육기간중 모처럼 휴일을 맞아 시청방면으로 관광삼아 자전거를 저어 나갔다가 전쟁기념관과 맞닥뜨리게 되었다. 나는 괜히 전쟁이라는 단어와 기념이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념할 것이 없어서 피흘리며 싸운 전쟁 따위를 기념할 것까지야, 하는 생각이었다.


처음엔 그저 스쳐지나가는 길이었다. 잠수교 지나 용산 거쳐 시청 주변에 산재한 우리 문화재를 둘러볼 요량이었다. 그런데 문화재보다 용산 미군기지 좌우로 높이 자란 플라타너스가 나를 먼저 맞이해 주었다. 이런 풍경은 이곳 아니면 오히려 찾기 어려운 풍경이다. 웃자란 플라타너스 가로수는 잘려나가기 십상인데 되려 미군기지 근처이기 때문에 이렇게 무사히 크고 높게 자란 것은 아닌지, 하는 의심이 들었다.


플라타너스 가로수 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맞이한 전쟁기념관의 첫인상은 크고 웅장함 그것이었다.



처음엔 정문이 아니고 옆문을 통해 입장하게 되었다. 입장료를 받는 곳이 아니다보니 특별한 안내가 없었던 탓이다. 기념관의 오른쪽 마당에는 이런저런 무기가 전시되어 있었다. 가장 먼저 시선을 잡아끈 것은 2002년 서해교전 당시의 고속정이었다. 피탄 흔적까지 그대로 복원해 놓은 함정을 보고 있자니 여러 생각이 들었다.


이 뿐만 아니라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각국의 무기들이 어떤 것은 모형으로 혹은 실물 그대로 전시되고 있어 기념관을 찾은 아이들은 즐거워하였다. 나이 지긋한 노병들은 잠시 군대시절을 회상하는지 무기 앞에서 오래 머물러 있곤 했다. 중간쯤 가니 현역시절 친숙했던 장비가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서 나도 그 앞에서 한참을 서성였다.




항공기 전시관의 대형수송기


국산전차는 물론이고 한국전쟁당시의 전차도 전시되어 있다.




우리나라 대공방어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미사일, 개인적으로 친숙한 무기체계다.




미그 19


하나하나 눈에 담으며 걷는데 이웅평씨가 몰고 귀순한 미그-19가 보였다. 요즘은 민방위훈련의 강도가 예전같지 않지만 이웅평씨가 귀순할 때의 당시 상황은 참으로 가슴 오싹한 순간이었다. 텔레비전과 라디오로 흘러나왔던 아나운서의 다급했던 멘트가 아직 잊혀지지 않는다.


- 지금은 실제상황입니다. 훈련상황이 아니고 실제상황입니다. 시민 여러분께서는 질서정연하게 가까운 건물지하나 지하철 그리고 대피소로…….


어린 나이에 당장 전쟁이 터지는 것은 아닌가 하고 안절부절했던 그때가 떠올랐다. 가끔 지금도 이 일을 떠올리면 세상엔 이해하기 힘든 일 투성이라는 생각이다. 북한 최고 엘리트였던 그가 미그기를 타고 귀순한 것도 그렇고 귀순동기도 우습고 방공망이 쉽게 뚫린 것도 그렇고. 하긴, 얼마전엔 노크귀순도 있었으니.


어쨌든 그날의 일로 일순간 전국은 전시상황에 준하는 상태에 빠져들었고 동시에 민방위 훈련의 필요성이 입증된 날이기도 했다. 동네 슈퍼마켓의 라면이 동이 나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고.


코브라헬기



전쟁기념관에 대한 사전지식이 없었던 나는 참수리호 모형을 보는 것으로 볼거리가 끝나는 줄 착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모퉁이를 돌자 비로소 나타나는 거대한 규모의 기념관 건물과 기념 조형물이 시선에 들어오자 그 규모에 놀라 저절로 입이 벌어졌다.


마지막 어머니의 모습에서 전쟁의 비극이 단적으로 느껴진다.


발걸음이 잘 떨어지지 않는 노병


자유는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동시에 평화를 깨려는 자들을 사전에 제거해야.


기념관 입구의 긴 회랑엔 한국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의 전사자 명단이 새겨져 있었다. 기념관 내부는 외부에서 느껴지는 웅장함에 비해 상대적으로 눈길을 끄는 것은 적었다. 한반도에서 벌어진 전쟁의 역사와 각종 병기들의 단순한 나열, 그리고 한국전쟁 당시의 상황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전시되어 있었다. 


군사정권 시절에 학교를 다녔던 터라 요즘 젊은 세대에게는 신기하게 비춰지는 것들이 오히려 나는 지루하게 느껴졌다. 방학 때면 거의 반드시 숙제에 들어있던 반공서적 독후감을 수시로 써냈던 터라 해설사들의 해설내용마저 단조롭다는 인상을 받았다.


전사자명단이 설치되어 있는 회랑




기념관 중앙에 설치되어 있는 거북선


전쟁영화에서 많이 봤던 따발총이 전시되어 있어서 눈길이 갔다.


삐라의 내용이 웃음을 자아냈다.


지금도 한국전쟁 당시의 유해 발굴작업이 진행중이다.


한국전쟁의 원인과 역사에 대한 연구는 앞으로 더욱 폭넓게 진행되어야 한다. 구 소련 공산주의 체제의 붕괴로 더 많은 자료들이 쏟아지고 있다. 전쟁의 원인에 대한 더 깊은 연구가 없이는 앞으로도 같은 비극이 재현될 수 있기 때문에 객관적이고 정확한 역사연구는 반드시 필요하다. 


전쟁기념관이라는 명칭보다는 전쟁역사관이 적절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것은 정문을 빠져나오는 순간이었다. 소설가가 인용한 어린 학도병이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의 내용이 떠올랐다.


'어머니, 우리는 지금 중대라고 하지만 오십 명뿐입니다. 적의 대부대는 다시 이 고지를 빼앗으러 올 것입니다. 우리도 빼앗았으니까 적들도 빼앗겠지요. 우리는 지금 참호 속에서 거총하고 적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금, 적들은 기척이 없습니다. 우리는 죽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머니, 저는 상추쌈이 먹고 싶습니다. 풀 먹인 여름옷을 입고 싶어요.'  


- 김훈 내 젊은 날의 숲- 15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