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견문록4 시청과 광화문
자전거탄풍경

자전거 타기가 일상사가 된지 꽤 오래된 나에게도 서울의 번잡한 시가지를 관통하기란 쉽지 않았다. 상업밀집지역에서 조금 벗어난 외곽은 그래도 비교적 자전거도로가 정비되어 있어서 나쁘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시청에 가까워질수록 교통체계도 그렇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차량의 흐름 때문에 여간 힘들지 않았다.


한 때 강남에서 잠시 머문적이 있었다. 거기 지인이 한날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시내에 볼 일이 있어서 간다고. 당시 내 입장에선 서울에서 특정지역을 별도로 구분하여 시내라고 부르는 것이 머리를 갸우뚱하게 만들었다. 강남 사람인 그에게서 시내란 시청을 중심으로한 종로, 명동 그 근방이 시내였던 것이다. 당시엔 한참 번화해지고 있고 화려한 유행을 선도하는 곳이 강남인데……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세월이 지나고 들은 풍월이 생기니 역시 서울을 대표하는 표정은 시청과 광화문 일대가 더 많이 간직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도 교육기관의 원장이 휴일 뭐할거냐고 물었을 때 이렇게 말했다.


- 오랜만에 서울 왔으니 시내구경이나 해야죠.


- 시내? 강남?


- 아뇨. 시청 근처 들렀다가 종묘에 가볼까 해요.


내 대답에 골수 서울시민인 그의 표정이 살짝 당황하는 것 같아서 재미있었다.


참 많이 변한 서울시청 앞



용산을 지나 숙대앞을 지났다. 서울역을 지나 시청에 다다르니 내 기억엔 서울의 풍경 중 가장 많은 변화가 있는 곳은 바로 이 근처가 아닌가 싶었다. 좋은 뜻으로 예전에 비해 숨통이 트인다는 느낌이었다. 그 예전 어렴풋이 떠오르는 이곳은 자전거로 다니는 것이 상상 조차 할 수 없는 곳이었는데 심심찮게 자전거라이더들이 눈에 띄니 반갑기 그지 없었다.


서울의 특별한 시민들이 이 광장을 소유하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했던 것인지. 지금도 감지덕지지만 개인적인 생각엔 길이를 줄이더라도 좌우에 차량을 다른쪽으로 우회하게 하고 나무를 심어 녹색공간을 늘였더라면 더 금상첨화가 아니었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광장에 접어들자 자전거에서 내려 걸었다. 좌우의 차량에서 뿜어내는 매연과 소음은 광장이 광장으로서의 기능을 온전히 못하게 억압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광화문광장을 대표하고 있는 세종대왕상





광장에서 앞으로 걸어가면 맞은편 북악산 산자락 아래로 조선왕조를 대표하는 경복궁이 아름답게 자리잡고 있는 것이 보인다. 서울엔 돌산이 많아 주위를 둘러보면 은근히 보는 맛이 좋다. 경복궁 내부는 다음으로 미루고 자전거를 창덕궁 방향으로 돌렸다.




휴일을 맞아 나들이 나온 많은 시민들이 수문장의 교대행사를 기다리고 있다.


사람이 너무 많아 다음으로 미룬 경복궁, 지금은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창덕궁과 종묘를 향해 가는 길에 잠시 인사동거리를 스쳐지나갔다. 풍문에 비하면 그렇게 우리문화를 느낄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아마도 사람이 모이니 자연스럽게 자본의 힘이 가만 놔두지 않고 침범하지 않았나 싶었다. 자전거를 되돌려 나오는데 정면에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여자가 걸어오고 있었다. 모자와 선글라스를 꼈지만 정말이지 낯설지 않아서 자세히 보니 방송연기자 김남주씨였다. 옆에 그의 딸로 보이는 아이도 있었다. 


서울을 찾은 첫날처럼 예전 같으면 이 어여쁜 연기자의 모습에 눈이 휘둥그레해졌을 텐데 이상하게도 크게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김남주씨와 아이를 부드럽게 우회하여 천천히 스쳐지나가면서 어쩌면 이런 자잘할 일상들, 그러니까 텔레비전에서 보던 사람을 우연찮게 길에서 마주친다거나 내것은 아니지만 아름다운 문화재를 마음만 먹으면 힘들지 않게 찾을 수 있는 일이 사람들을 서울로 서울로 모여들게 하는 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날이 가을치고는 제법 더웠고 등엔 땀이 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