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하고 거룩한 밤의 요셉
일상다반사

마리아와 남편 요셉의 고향은 나사렛이었다. 그랬던 그가 만삭의 아내를 데리고 베들레헴으로 길을 나섰던 것은 당시 이스라엘민족을 지배하고 있던 로마 황제 아우구스토가 온 천하에 호구 조사령을 내렸기 때문이었다. 해서 많은 사람들이 본고장을 찾아야 했다. 성서 누가복음의 이 기록은 그러나 역사가들의 고증에 의하면 그 시기가 예수의 탄생일과 정확하게 일치하지 않는다고 한다마태복음의 기록엔 헤로데 왕 때 두살 이하의 사내아이를 모두 죽이라는 위급한 상황에서 피신하였다고 전하지만 이 또한 누가복음의 기록과도 일치하지 않아서 가끔 혼란을 준다.


성서에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어쨌든 요셉은 고향을 떠나 베들레헴에서 아이를 얻었고 한동안 고향이 아닌 외지를 떠돌다가 다시 고향 나사렛으로 돌아온 것만은 분명하다.


딱히 기독교를 믿는 사람이건 아니건 우리는 예수가 남녀간의 생물학적인 결합으로 태어난 사람이 아니라고 알고 있다. 아는 것과 믿는 것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어쨌든 요셉은 약혼자 마리아의 몸에 결혼도 하기 전에 생명이 자라고 있음을 알게된다. 복음서의 기록엔 그는 법을 잘 지키는 사람이었다. 이 말은 얼핏 흘려넘기기 쉽지만 무서운 뜻을 함의하고 있다. 요셉은 조용히 파혼하는 것으로 일을 마무리 짓고 싶었다. 당시 유대사회의 율법은 처녀가 아이를 가지면 마을사람들이 돌로 쳐서 죽임을 당하게 되는 것이었다. 모세의 율법은 간음한 자에게 너그럽지 않았다.


옆집 사람이 굶어 죽어도 몇달 뒤에나 발견되기도 하는 오늘날과는 다르게 당시엔 결혼을 하거나 아이를 낳는 것은 작은 유대공동체사회에서 숨길 수 없는 일이었다. 요셉의 갈등이 어느 정도 수준이었을지 짐작이 된다. 이런 일이 당신에게 벌어졌다면 당신의 선택은 어떠했겠는가? 물론 성서의 기록은 천사 가브리엘을 동원해 요셉에게 무서워하지 말라, 라는 하느님의 메시지를 전하게 된다. 기독교에 대한 믿음이 없는 이들은 상식적인 입장에서 이 사태에 대해 아주 다양한 상상이 가능할 것이다. 그런 상상은 일단 접어두자. 


호구조사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다른 사정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어쨌든 요셉은 이 얄궂은 운명을 받아들이고 고향에서의 출산과 삶을 포기하고 만삭의 아내를 데리고 조용히 광야로 길을 나선 것이다. 광야의 흙바람을 이겨내고 그들이 당도한 곳은 작은 마을 베들레헴, 그곳에서 두 사람은 변변한 방조차 구할 수 없었다. 아내는 진통을 시작했고 결국 작은 마굿간에서 자리를 만들어 새생명의 탄생을 기다리게 되었다.


산고 끝에 태어난 후 말구유에 포대기로 덮혀 있던 이가 바로 예수였다. 친지들의 도움과 축복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질까 두려워하며 몰래 얻은 아이였다. 그 아이에게 마리아가 수유를 하는 모습을 지켜본 요셉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아마도 그는 마굿간을 나와 무릎을 꿇고 자신의 선택과 새생명을 이끌어주신 그가 믿는 유일신에게 감사의 기도를 드렸을 것이다. 


- 하늘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가 사랑하시는 사람에게 평화!


예수가 태어난 첫날 가장 고요하고 거룩한 이는 바로 그 사람 요셉이었다. 그리고 마리아와 예수, 두 생명을 지켜낸 이순간 어쩌면 그는 구원이라는 선물을 동시에 받았을 지도…….


메리 크리스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