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색의 메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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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생각없이 자전거를 타고 가는데 나를 놀래키는 물체가 바닥에서 눈에 들어왔다. 바닥의 색과 구분이 어려운 메뚜기 한마리였다. 급히 브레이크를 잡으며 메뚜기를 피했다. 하마터면 그를 밟고 지나갈 뻔했다. 이런 일을 일컬어 로드킬이라고 한다지.


이 경우는 너무 지나친 그의 보호색이 되려 그의 생명을 위태롭게 한 것이다.


오래간만에 만나게 된 생명이라 자전거에서 내려 구경하였다. 오호라, 자세히 보니 메뚜기과의 방아깨비였다. 다리를 잡으면 속절없는 버둥거림이 방아를 찧는 모습과 흡사하여 그런 이름이 붙었다 한다. 붙잡아 옛일을 재현해 보려 하다가 멀리 한 무리의 마라톤 동호회원들이 몰려오고 있어서 포기했다. 이대로 방아깨비를 내버려 두었다가는 사람의 발에 밟힐지도 몰랐다.



나는 그를 길에서 수풀 쪽으로 몰았다. 내 마음은 급한데 방아깨비는 꿈쩍을 할 줄 몰랐다. 손톱으로 더듬이 옆을 한 대 때려주니 그제서야 놀라서 날개를 펴는 방아깨비.


잠깐 따다다다, 하는 소리가 났고 그는 짧게 비행하여 풀잎 위로 몸을 옮겼다. 뭔일 있었냐는 듯 거만하게 머리를 곧추세우고 있는 모습이 꽤 우스웠다. 보호색 말고도 그는 기특하게 날개를 몸에 숨기고 있었던 거였다. 마침 마라토너들이 우르르 지나갔고 나는 다시 자전거에 올랐다. 


보호색에 의지해 숨어 있기보다는 날개를 펴야 할 때는 펴야하는 법이다. 나는 괜히 마음이 급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