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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물피해, 길이 사라졌다.
일상다반사



연일 쏟아지던 비가 그친지 이틀째다. 늘 다니던 자전거길을 찾으니 온통 물바다다. 유난히 태풍이 잦았던 해로 기억될 것 같다. 물난리가 있을 때 넘실거리는 강물을 보며 늘 신기한 것은 그렇게 씻기고 씻긴 땅에서 더 씻겨나올 흙이 남아 있었을까, 하는 것이다. 


강은 한치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흙탕물 투성이었다.


한 이틀 큰비에 낙동강의 하류는 쉽게 넘쳐나고 말았다. 그간 사람들의 궁리가 무색하게도 단 한번의 큰비에 그렇게 된 거였다. 흙탕물 속엔 그간 쏟아부었던 그들의 결과물들이 잠겨있다. 허무하게도.


문제는 이런 일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일까? 그럴리가 없다. 뻔히 알면서도 그리 한 것이다. 과연 누구를 위하여 사람들은 그 일을 벌였던 것일까?



당분간 강따라 달리는 자전거 종주길은 이번 큰 비로 사실상 중단되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물이야 빠지겠지만 흙탕물에 쓸려온 온갖 잡동사니들이 치워지지 않는한 길은 길이 아닐 것이다. 


다시 한번 의문이 든다. 일을 벌린 사람들은 이렇게 될 것을 예상 못했을까? 주기적으로 범람하는 곳에 길을 내고 수시로 청소를 해야한다면 길은 과연 오래 유지될 수 있을까?



자전거가 달리던 길에 미꾸라지가 올라왔다. 흙탕물엔 미꾸라지가 제법 어울린다. 미꾸라지는 죄가 없는데 이 난장판과 허무한 길에 대한 책임은 누구에게 물어야 하나. 하늘이야 사람의 일을 돌보는 법이 없다. 해서 노자는 천지불인(天地不仁)이라고 하지 않았나.


불인한 자연에 섯부른 인공을 획책한 자들은 아마도 어리석은 사람일 것이다. 다시는 어리석은 자에게 큰일을 맡겨서는 안될 것이다.


물이 불은 강과 물에 잠긴 길을 보고 있자니 참 여러가지 생각이 났다.






흔한 추석 선물 세트
일상다반사



누구나 같은 금융기관과 20년 이상 거래를 하다보면 의례적인 명절 선물을 받기 십상이다. 택배기사의 연락을 받고 뛰어나가 받은 선물상자를 개봉하니 놀라웁게도 통영멸치가 한가득이다. 놀란 이유는 멸치의 원산지가 올 초 자전거여행을 갔다가 들른 통영 한려수도인데다가 생전 요리라고는 안하던 내가 요즘 된장찌개 끓이는 일에 제법 재미를 붙였던 터였다.


된장찌개와 멸치는 뗄래야 뗄 수 없는…… 한동안 멸치는 잊어버려도 되겠네.


거기다 마른새우도 한 봉 같이 들어있으니 괜히 마음이 설렌다. 새우를 넣은 국물에서는 어떤 맛이 나려나. 의례적인 명절 선물이겠거니 했는데 괜히 혼자서 감격했다. 물론 보내는 측에서야 무작위로 보냈겠지만, 나는 꼭 누군가가 내 살아가는 사정을 속속들이 알고 있다가 살뜰히 챙겨서 건넨 듯한 착각에 빠져든 것이다.


봉지를 찢어 냄새를 맡으니 지난 초여름의 그 바다 냄새가 폐부로 빠르게 파고들어온다.


괜히 눈물겨웠다.


흔한 선물 세트에 이토록 혼자 감격하고 앉았다니. 






보호색의 메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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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생각없이 자전거를 타고 가는데 나를 놀래키는 물체가 바닥에서 눈에 들어왔다. 바닥의 색과 구분이 어려운 메뚜기 한마리였다. 급히 브레이크를 잡으며 메뚜기를 피했다. 하마터면 그를 밟고 지나갈 뻔했다. 이런 일을 일컬어 로드킬이라고 한다지.


이 경우는 너무 지나친 그의 보호색이 되려 그의 생명을 위태롭게 한 것이다.


오래간만에 만나게 된 생명이라 자전거에서 내려 구경하였다. 오호라, 자세히 보니 메뚜기과의 방아깨비였다. 다리를 잡으면 속절없는 버둥거림이 방아를 찧는 모습과 흡사하여 그런 이름이 붙었다 한다. 붙잡아 옛일을 재현해 보려 하다가 멀리 한 무리의 마라톤 동호회원들이 몰려오고 있어서 포기했다. 이대로 방아깨비를 내버려 두었다가는 사람의 발에 밟힐지도 몰랐다.



나는 그를 길에서 수풀 쪽으로 몰았다. 내 마음은 급한데 방아깨비는 꿈쩍을 할 줄 몰랐다. 손톱으로 더듬이 옆을 한 대 때려주니 그제서야 놀라서 날개를 펴는 방아깨비.


잠깐 따다다다, 하는 소리가 났고 그는 짧게 비행하여 풀잎 위로 몸을 옮겼다. 뭔일 있었냐는 듯 거만하게 머리를 곧추세우고 있는 모습이 꽤 우스웠다. 보호색 말고도 그는 기특하게 날개를 몸에 숨기고 있었던 거였다. 마침 마라토너들이 우르르 지나갔고 나는 다시 자전거에 올랐다. 


보호색에 의지해 숨어 있기보다는 날개를 펴야 할 때는 펴야하는 법이다. 나는 괜히 마음이 급해졌다.



유혹하는 연꽃
일상다반사



연꽃은 어떤 각도로 찍어도 아름답습니다. 배경에 어둠을 깔고 있어서 꽃은 더 화려한 것 같습니다. 철 지난 사진이지만 자주 가는 공원 연지에 연꽃이 한창일 때 카메라에 담아두었던 것을 마음이 울적해질 때면 꺼내어 보게 됩니다.


보고 있으면 꼭 이렇게 화려한 연꽃을 닮은 사람이 옆에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 욕심이란 끝이 없는 것 같습니다. 요즘 공원 연지에 가보면 꽃은 대부분 져가고 그 자리에 연밥이 달려 있습니다. 연의 씨앗은 일만년을 간다,하는데 꽃이 진 뒷자리에 남은 모습은 사람의 시선을 잡아끌지는 못하고 있네요.


꽃의 유혹이 그 만큼 강했던 탓이겠지요.









약수터의 유기견
일상다반사



자주 가는 약수터 근처에 개 두마리가 나타났다. 처음 본 때는 더위가 유난한 어느 복날이었다. 같은 날 태어난 것으로 보이는 두마리의 개는 약수터에 오가는 사람 아무에게나 착한 얼굴을 하고 꼬리를 흔들었다. 처음엔 주인이 있겠거니 했는데, 개들의 하는 모양이 유별났다. 이 사람 나타나면 이 사람 따라 쪼르르 달려가고 저 사람 나타나면 저 사람 따라 종종걸음을 치고. 특히 자동차에서 사람이 내리는 기색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했다.


사람들은 무턱대고 따라오는 개들을 피하기에 바빴다. 그도 그럴것이 도회의 형편은 개 두마리를 키우기에는 솔직히 좀 야박한 상황이다. 개들의 행동과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나서야 버려진 개들임을 알게되었다. 나 역시 개들을 피하여 집으로 돌아왔다.



그 후 약수터에 갈 때마다 개들은 종종 나에게도 반갑게 달려들었다. 두 마리 중 한 마리만 유독 그랬다. 형인지 동생인지 알 수 없는 나머지 한 마리는 점점 지쳐갔는지 먼데서 멀뚱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아마도 개는 자신들을 데리고 갈 주인이 쉽게 나타나지 않을 것을 직감하고 있는 듯했다.


사정은 안됐지만 나는 별 방도가 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예의 약수터를 들렀는데 두 마리의 개가 보이지 않았다. 마음 착한 사람들이 거두어 갔을까? 아니면 어디 기관에서 보호시설로 데리고 갔을까. 생각은 급기야 혹시 어디 끌려가서 팔려버린 것은 아닌지 하는 어두운 생각도 났다. 풍경속에 두 생명체가 사라진 것만으로 괜히 허전한 생각이 들었다.


정작 보살펴 주지도 못했으면서...


늘 마음은 약수터로 출발하면서 가방 안에 개에게 먹일 간식거리라도 챙겨가야지 했지만 실천하지 못했던 것이 후회가 되었다. 



어디 좋은 주인이 나타나 잘 살았으면 하고 바랐는데, 오늘 오후에 약수터에 들르니 늘 뛰어놀던 길가에 개들이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인사도 건네고 사진도 찍었다. 변화가 있다면 둘 다 사람을 반기는 강도가 많이 줄어 있었다. 사람들이 결국 자신들을 외면하는 것에 이미 익숙해져 버린 탓일 거다.


가방을 뒤졌지만 그들에게 먹일 아무 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기회를 또 놓치고 만 것이다. 개들은 활동반경을 넓혀 이곳저곳 먹을 것을 구할 수 있는 곳을 찾아 떠돌이 생활에 접어든 거였다. 해서 타이밍이 맞지 않으면 약수터 근처에서 볼 수 없었던 것이다. 


멀리서 검은색 승용차가 다가왔다.


애교가 많은 한 마리가 부리나케 자동차 가까이에 달려가서 꼬리를 흔든다. 역시 차에서 내린 중년의 남성은 소 닭 보 듯하며 개를 스쳐지나간다.


개는 아마도 자동차의 엔진소리 시트의 가죽냄새에서 그들이 떠나온 곳, 집을 기억하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존재의 형태가 어떻든 간에 버려진다는 것은 몹시 쓸쓸한 일이었다.

 

이별 만큼이나.




기다려지는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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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기다려지는 요즘입니다. 올해의 더위도 십여년 전의 그 더위와 함께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더위 같습니다. 대학 3학년 때였나봅니다. 다들 해외연수다 뭐다 방학이 되자 바깥으로 바깥으로 떠나기 바빴던 그 시절. 나는 한평 반짜리 고시원에서 그 해의 더운 여름을 버텨내고 있었더랬죠.


지금은 그 시절로 참 돌아가고 싶지만...


땀을 있는대로 흘리면서도 스스로에게 만족스러워서 책상을 떠날 때면 창 밖으로 떨어지는 하루의 해에 부끄럽지 않았습니다. 행복이란 열정을 쏟을 수 있는 대상이 있다는 것과 그 대상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세월의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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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는 듯하던 날씨가 기승이더니 요즘은 연신 비의 연속이다. 태풍도 온다니 이러다가 가을은 비와 함께 성큼 다가올 것이다. 가을과 동시에 월동할 곳을 찾아 나서야겠지. 오지 않을 것 같던 날이 참 빨리도 다가온다. 


세월은 늘 이런식이다.


그래서 때때로 두렵다.

블로그 사용설명서
일상다반사

블로그 이름: your2013

 

블로그 주제: 마구잡이 글쓰기


이런 저런 블로그 서비스를 전전하다가 

도망치듯 이곳으로 이사했습니다. 


다른 블로그에서는 전세집에 사는 느낌이었다면 이곳에서는 

비로소 내 집을 가지게 되었다는 묘한 느낌이 드네요. 


이곳이 네트워크 상의 마지막 거처였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몰라도 상관없지만 알아두면 편리한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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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