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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투게더, 야간매점
일상다반사

우리나라에서만 통용되는 말이 있다. 개그맨이라는 말이다. 이 말은 통상의 영미권 사람들은 사용하지 않는 말이다. 처음 사용한 사람은 개그맨 전유성이다. 코미디언이라는 말과 구분할 목적으로 그가 찾아낸 말이니 외국인들이 알아들을 리가 없다. 우리나라의 방송환경에서 희극배우를 뜻하는 코미디언이라고 부르기에도 딱히 적당하지 않고 MC, 진행자라고 부르기에도 썩 어울리지 않으면서도 방송을 통해 사람들을 즐겁게 만드는 연예인을 칭하는 데에는 개그맨 만한 말도 없는 것 같다.


이십대 시절에 한 개그맨 지망생과 인연이 닿았던 적이 있다. 개그맨도 아니고 그저 개그맨 지망생이었는데도 사람들을 얼마나 행복하게 만드는지 그 재주가 너무 신기하고 부러웠었다. 그는 사람을 웃기는 것에도 시간을 정해 놓고 주변 사람들을 포복절도 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정해진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자리를 뜨고 마는데, 사람들은 그가 떠나는 것을 너무나 아쉬워하기 십상이었다. 허리가 끊어질 정도로 웃다가 등돌리고 떠나는 개그 지망생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면 무슨 마법사 같기도 하였다.


후에 안 일이지만 그는 결국 개그맨이 되지는 못하였다. 나는 방송에서 개그맨을 볼 때면 그 지망생의 얼굴이 때때로 떠오른다. 지망생의 내공이 그 정도였는데 정식 개그맨은 얼마나 더 사람을 잘 웃길 수 있어야 시험에 통과할 수 있는 것인지. 사람을 웃음으로 이끌어 잠시 동안이라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능력은 참으로 훌륭한 재주이다. 그 중에서도 개인적으로 유독 좋아하는 개그맨은 유재석이다.


목요일마다 그와 게스트 사이에 벌어지는 토크 공방전을 지켜보면서 이런저런 세상사의 고민을 잊고 작은 행복에 빠져든다. 그러다가 야간매점 코너를 보고 있노라니 문득 나에게도 야간매점용 레시피가 있었던 것이 생각났다. 해서 이렇게 소개해 보는데.



재료는 역시 야간매점용이므로 저렴하면서도 빠른 시간에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인스턴트 미역국과 떡국 두가지만 있으면 된다. 떡국을 절반 정도 냄비에 들어내 깨끗이 씻은 다음 미역국 건조스틱과 함께 넣는다. 물을 떡이 살짝 잠길 정도 붓고 끓인다.



한소끔 끓고 나면 미역국 봉지 안의 동봉되어 있는 들기름을 뿌려주고 잠시 더 끊이면 요리랄 것도 없는 미역떡국이 완성된다. 떡국과 미역국이 웬말이냐, 할 사람도 있겠지만 이 레시피는 야간매점용임을 잊지말자. 밤에 출출하기는 한데 라면먹기는 꺼려질 때 제법 그럴듯한 음식이다. 맛은 그런대로 먹을만……



야간매점용 떡국을 우물거리며 드는 생각이, 유재석처럼 사람을 행복하게 웃음짓게 만드는 사람이 내 동생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유명한 개그맨이 아닐지라도.

섬집아기, 기타로 쳐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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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다보면 어쩔수 없이 듣게 되는 말이 있습니다. 자기관리나 자기개발처럼 요사이 자주 듣게 되는 말이 힐링이라는 단어입니다. 홈쇼핑 방송을 보다보면 듣게 되는 엉덩이가 업돼보입니다, 처럼 우리말도 아니고 영어도 아닌 묘한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관리나 개발이 소비심리를 자극하는 마케팅의 수단이듯이 힐링이라는 말도 결국 돈을 쓰라는 강요와 다를바 없다고 생각합니다. 몸매도 관리의 대상, 피부도 관리의 대상, 인생도 관리…… 거기엔 모두 적잖은 금액을 지불해야 하는 것 투성이고 또 그 트랜드를 따르려다 보면 과한 노동에 내몰리게 되는 것이 현대인의 운명 같습니다. 그래서 이런류의 언어를 듣다보면 좀 폭력적인 것은 아닌가 할  때가 있습니다.


힐링이 상처 받은 몸과 마음에 치유행위를 가한다는 일련의 과정이라고 이해했을 때 가장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내가 상처받은 사실의 여부보다 내가 누군가에게 상처 준 일은 없는가를 먼저 살펴야겠습니다. 그리고 꼭 힐링에 어떤 거창한 격식이나 물질, 사람이나 장소가 필요한 것은 아니겠죠.


잘은 못치지만 [섬집아기]를 기타로 뚱땅거리며 이사람 저람들과의 일을 떠올립니다. 동시에 고요히 생각에 잠기는 시간이 많아지는 요즘입니다. 이것도 일종의 힐링이라면 힐링이겠죠. 제법 오래된 개인적인 방식의 힐링.


                                                                           섬집아기.gp5


악보를 첨부했습니다.

고요하고 거룩한 밤의 요셉
일상다반사

마리아와 남편 요셉의 고향은 나사렛이었다. 그랬던 그가 만삭의 아내를 데리고 베들레헴으로 길을 나섰던 것은 당시 이스라엘민족을 지배하고 있던 로마 황제 아우구스토가 온 천하에 호구 조사령을 내렸기 때문이었다. 해서 많은 사람들이 본고장을 찾아야 했다. 성서 누가복음의 이 기록은 그러나 역사가들의 고증에 의하면 그 시기가 예수의 탄생일과 정확하게 일치하지 않는다고 한다마태복음의 기록엔 헤로데 왕 때 두살 이하의 사내아이를 모두 죽이라는 위급한 상황에서 피신하였다고 전하지만 이 또한 누가복음의 기록과도 일치하지 않아서 가끔 혼란을 준다.


성서에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어쨌든 요셉은 고향을 떠나 베들레헴에서 아이를 얻었고 한동안 고향이 아닌 외지를 떠돌다가 다시 고향 나사렛으로 돌아온 것만은 분명하다.


딱히 기독교를 믿는 사람이건 아니건 우리는 예수가 남녀간의 생물학적인 결합으로 태어난 사람이 아니라고 알고 있다. 아는 것과 믿는 것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어쨌든 요셉은 약혼자 마리아의 몸에 결혼도 하기 전에 생명이 자라고 있음을 알게된다. 복음서의 기록엔 그는 법을 잘 지키는 사람이었다. 이 말은 얼핏 흘려넘기기 쉽지만 무서운 뜻을 함의하고 있다. 요셉은 조용히 파혼하는 것으로 일을 마무리 짓고 싶었다. 당시 유대사회의 율법은 처녀가 아이를 가지면 마을사람들이 돌로 쳐서 죽임을 당하게 되는 것이었다. 모세의 율법은 간음한 자에게 너그럽지 않았다.


옆집 사람이 굶어 죽어도 몇달 뒤에나 발견되기도 하는 오늘날과는 다르게 당시엔 결혼을 하거나 아이를 낳는 것은 작은 유대공동체사회에서 숨길 수 없는 일이었다. 요셉의 갈등이 어느 정도 수준이었을지 짐작이 된다. 이런 일이 당신에게 벌어졌다면 당신의 선택은 어떠했겠는가? 물론 성서의 기록은 천사 가브리엘을 동원해 요셉에게 무서워하지 말라, 라는 하느님의 메시지를 전하게 된다. 기독교에 대한 믿음이 없는 이들은 상식적인 입장에서 이 사태에 대해 아주 다양한 상상이 가능할 것이다. 그런 상상은 일단 접어두자. 


호구조사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다른 사정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어쨌든 요셉은 이 얄궂은 운명을 받아들이고 고향에서의 출산과 삶을 포기하고 만삭의 아내를 데리고 조용히 광야로 길을 나선 것이다. 광야의 흙바람을 이겨내고 그들이 당도한 곳은 작은 마을 베들레헴, 그곳에서 두 사람은 변변한 방조차 구할 수 없었다. 아내는 진통을 시작했고 결국 작은 마굿간에서 자리를 만들어 새생명의 탄생을 기다리게 되었다.


산고 끝에 태어난 후 말구유에 포대기로 덮혀 있던 이가 바로 예수였다. 친지들의 도움과 축복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질까 두려워하며 몰래 얻은 아이였다. 그 아이에게 마리아가 수유를 하는 모습을 지켜본 요셉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아마도 그는 마굿간을 나와 무릎을 꿇고 자신의 선택과 새생명을 이끌어주신 그가 믿는 유일신에게 감사의 기도를 드렸을 것이다. 


- 하늘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가 사랑하시는 사람에게 평화!


예수가 태어난 첫날 가장 고요하고 거룩한 이는 바로 그 사람 요셉이었다. 그리고 마리아와 예수, 두 생명을 지켜낸 이순간 어쩌면 그는 구원이라는 선물을 동시에 받았을 지도…….


메리 크리스마스.



마음 한켠이 휑하던 날, 다대포.
자전거탄풍경



마음 한켠이 휑한 날이다. 바다를 보면 조금 나아질까 싶어서 길을 나섰다. 겨울이라는 계절의 바다는 을씨년스럽기 그지 없었다. 나의 간절함보다 그들의 간절함이 더 컷기에 결과가 이렇게 나왔겠지 자위해보지만 쉽사리 납득이 되지 않는다. 무관심마저 비정치적인 것이 아니니 결국 이 나라에 사는 한 어떤 형태로든 정치에 관계될 수밖에 없다. 해서 저 반칙과 특권의식으로 가득찬 자들의 후퇴를 그렇게 간절히 바랐건만…… 


사람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오늘도 하루의 해가 다대포 바다 너머로, 낙동강의 갈대숲 사이로 떨어지고 있다. 앞으로의 나날을 이 대자연처럼 무심하게 버텨낼 수 있을까? 


바다 앞에서 나는 쉽사리 자신할 수 없었다.